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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를 삶으며

                                                                  노 향 림

       충남 당진의 깊은 산골로

       산산이 옮겨간 뒤 수복한 잡초속에

       몇 기의 무덤이 있다

     그곳에서 캐낸 감자 한 상자가

     내가 사는 고층 아파트까지 올라왔다

    붉은 황토가 묻은 감자 알들은

     임부의 배처럼 튼실햇다

     속에다가 무슨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지

    모두가 크고 튼실했다

   속에다가 무슨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지

   모두가 크고 둥글었다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모골이 송연해졌다

   오랜 땅속 깊숙이에서만

   안으로 뭉쳤을 응집력탓이다

  (...)          . 

   드디어 익은 감자를 식히고 한잎 베어먹는다

  잘 익어 혀끝에 살살녹는다

   몇편의 시도 이처럼 잘 익어

  입에 녹는 맛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는 생각이 둥글둥글 잘 익은 놈이다

                                                                 김승희 시인 서강대 국문과교수

  선산의 발치아래 자투리땅이 감자밭이라니

  그 감자들 참 옹골차겠다 그 감자들이 고층 아파트까지

  올라와 스테인리스 냄비 안에서 덜컹 대고 있으니 탐스러운 시간들이

 얼마나 잘 익어가는가, 시도 잘 익은 둥근놈으로 몇편 얻는다면 이 여름 그것으로 충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