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의 후예들 ~

작가지망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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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시 2019-02-21 10:24:52


     이탁오의 후예들 - 조선 선비를 매료 시키다 -공안파-


   `전범으로 삼거나 표준으로 삼아야 할 시대의 문장이란 애초에 존재하자 않는다.

   古文이 今文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조선의 문학사와 지성사는 그 시대의 문인과 지식인들 사이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한 중국의 지식인 그룹을

   도저히 피해 갈수가 없다 .:공안파"라 불리는명나라 말기.지식인 그룹이다.

   -이용후는 공안과 이론을 깊이 통찰해 글을 썼고 이덕무의 창작적 실천은 공안과의 논리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박지원은 공안과의 사유와 비평으로 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사유와 비평을 적립하고 그것을 실천해 옮긴 글쓰기 였다.

    -강명관 교수-   

    공안과는 원씨 삼형제 (원종도, 원굉도,원중도,)로 이들의 고향이 형주부 공안이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실제는 원굉도의 사상적,문학적 영향력이 절대적 이었기에 원굉도 한삶을 지칭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끼친 공안파 문장과 철학은 원굉도의 문집인 <원중랑집>에 실려있는 글이 대부분이다.

   공안파는 이탁오의 사상적 문학적 영향력 아래서 문학적 사유를 정립하고 창작 활동을 했다

    원씨 삼형제가 이미 문장과 철학이 원숙한 경지에 오른 노장의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이탁오를 만난것은 1590년이다 .

    특히 원굉도는 이탁오의 <분서>를 증정받아 탐독하면서 감화를 받았다.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원굉도는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새롭고 독창적인 문장 철학이자 미학이 되었다 공안파의 면모는 고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문장의 전번과 표준으로 삼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당대 문단의 현실을 전면적으로 거부 했다는 점이다.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속박 당하지 않은 진실한 마음과 감정,오직 `독서성령性靈  불구격투不拘格套 -오직 성령을 표현할 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터득하기 어려운 것은 오직 의취意取 일 따름이다 의취라는 것은 마치 산 위의 색깔, 물의 맛, 꽃 속의 빛깔,

    여인의 자태와 같아서 비록 설명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형상에 대해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마음으로 터득해 깨달은 사람이라야 할 수 있다 의취,란 어린 아이와 같아서 자신에게 의취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해도 어느 곳에 있거나 의취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얼굴에는 일부러 단정하게 꾸민 모습이 없고 눈동자는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느라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입은 말을 참지못해 늘 재잘거리고 이리 뛰고 저리 돌아다니느라

    한곳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은 어린아이 시절보다 더 좋은 때가 없다

    맹자가 말한 `어린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나 노자가 말한 `어린아이 만이 그렇게 그렇게 할수있다,`라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상태를 가르키는 것이다 ,-원굉도 <원중랑집>-

   

   이른바 고문이라는 것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해악이 극심하다. 당나라 시에 노예가 되어 숭상하는 것을 시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시가 아니다. 송나라, 원나라의 문장가들이 을려놓은 침방울들로 과장되게 꾸미거나 아름답게 장식하여 시문의

   대가들 이라 말하는데 대가는 아니다.옛 것이면  옛 것일수록 고루해 천박하고 고루해 천박하고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더욱 가짜일 따름이다 ...

   그런데도 그들은,오늘날의 문장가들을 비루하다고 멸시하며 문장이 고문의 종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멀리 내쫓거나 문장가 집단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아아! 그러한 자들은 시대가 있다는 것을 일지 못하는 데 어찌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원굉도

  <원중랑집>-

   재미있게도 150년이 흘러 조선에서도 박지원의 <연암집>에 실려있는 :영처고서"를 읽어보면 데자뷰 현상처럼 원굉도의 주장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 조선에서도 이덕무의 시를 두고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었다.`비루하구나,

   이덕무가 지은 시야말로 옛사람의 시를 배웠건만 그 시와 비슷한 점을 볼수가 없구나 거칠고 서툰 사람의 비루하게 안주하고

   오늘날의 자질구례하고 보잘것 없는 풍속을 즐겨 읊는다 지금의 시 일 뿐 옛시는 아니다. `

   그러나 박지원은 이 소리를 듣고 `이것이야 말로 이덕무의 시에서 볼만한 것` 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 정조는 원굉도<원중랑집>`을 문장을 망치는 해로운 적 `이라 지목했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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